답사 후기 :

47회 2001.10.17.

 Start 인사동길과 태화관로가 만나는 사거리에서 시작

01 <아틀리에 서울>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다.

<사람과 나무>
: 이 가게는 두 골목- <아틀리에 서울> 골목과 <너에게 꽃을 던지고 싶다>골목의 두 곳으로 입구가 나있다. 지난 답사에서 본 근사한 마당과 나무가 이루는 풍경이 여전히 이 곳 골목에서도 문틈으로 조금 보이고 있다. 자신이 위치한 지리적 상황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기간의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건축적 경계의 모호성
: <사계>,<갤러리AM>,<닮은 사람들>은 밖에서는 전혀 다른 세 개의 가게들로 보이지만, 수치지도나 기타 다른 자료 등을 보면, 1개 혹은 2개의 건물을 나누어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층의 밀집지역에서는 이렇듯 건축적 경계를 규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영빈장>
: 종로 등에서 여관의 자리잡기에는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다. 물론 이 원칙은 여관이라는 기간의 근본적인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다. 영화 <오! 수정>에서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보여준다'며 여자 주인공을 골목으로 유인하는 그 은밀함처럼, 종로의 여관들은 길을 한 번 그리고 두 번 돌면 나타나는 내밀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이 <영빈장>처럼 막다른 골목에 자리잡은 예도 그리 드물지 않다.

막다른 골목의 <산촌>
: 골목은 한 번, 두 번, 세 번을 돌아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이곳에 <산촌>이라는 한정식집이 있다. 다른 인사동 골목에 이 집의 지점이 있었는데, 두 가게는 마당을 두터운 유리로 아트리움 중정을 만들어, 실내화하는 공통점이 있다.

한옥에 석조대문
: 막다른 골목을 다시 돌아나오다가 바로 눈에 띄는 것이, 어느 한옥 앞에 자리한 석조대문이다. 대문의 지붕은 노출콘크리트로 곡선을 살리고, 대문칸의 양쪽은 돌로 쌓아 놓는 '전형적인 중상류층의 주택 대문'이 오랜 세월의 때를 안은 채 이 막다른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옥인동 등지에서 한옥을 본채로 하고, 대문은 근대식으로 다시 세우는 이와같은 예를 이미 수요답사에서 소개한 바 있다.(34회:한옥 얼굴을 고치다) 그런데 이렇게 인사동 막다른 골목에서도 그런 대문양식이 발견되어 매우 흥미롭다. 아마도 서울에는 일정한 시기에 이와같이 '중상류층을 상징하는 석조대문 짓기'가 유행처럼 퍼져갔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02 인사동길로 다시 나서다.
: 통인가게 앞을 지나다.
대대적으로 공사를 하고 있는 <명신당필방>,<다경향실>이 있는 2층 건물을 보았다. 외부에 잔타일이 붙은 점등에서 60년대 초에 지어졌거나 외장을 다시 정성스럽게 했을 가능성등을 생각해 본다. 이 건물의 뒷편을 보면 철골로 증축 부분에 구조적인 보강을 하고, 그 사이를 조립식 패널로 채운 모습이 눈에 띈다. 건식공사를 할 수 있는 구법과 재료를 사용하여, 빨리 공사를 마무리 하려는 건축태도를 읽을 수 있다.
인사동이 더 많은 도시인에게 개방된 오늘날, 인사동길 주변의 건물들은 내부나 외부의 모든 공사를 빠르고, 간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고, 그 결과적인 외양은 눈에 잘 띄는 색상이나 외형적 요소들로만 채우고 있다. 신중하게 내·외부의 공간과 형태를 조형해가는 건물이 일부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경향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날림과 싸구려의 양상'을 벗어나기 어렵다.
노후화와 불량함을 이유로 기존의 모든 외관을 새 것으로 교체하는 행위는 특히 인사동길 가로 이미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우리 서울의 물리적 표층은 매우 얇다. 도시의 역사가 600여년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 물리적인 표층의 역사는 100여년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통적인 혹은 고유하다는 느낌이란 한옥의 기와나 토담등에 국한되지 않고, 이 건물의 잔타일과도 같이, 4-50년 전의 근대적 건축에 쓰였던 외부재료 역시 지켜지고 가꾸어지며, 재적용될 가능성을 우리는 생각해 보야야 한다.
인사동길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이 거리의 문화이며, 그 문화는 그것을 감싸고 있는 건축에 신중하게 담겨야 하는데도, 그들 아니 우리 모두는 시간과 공간을 돈으로만 환산하고 이를 실행하고 있다. 결국 그러한 결과가 '더 빠르게 모두가 망하는 지름길'임을 모르는 채 말이다.

03 <명신당필방> 골목으로 들어서다.

인사동의 미운오리새끼
: 이 골목 입구에는 인사동길의 연속성에도 무관하고, 필지의 작고 자글자글한 크기와도 관계없는, 주변에 비해 뻐졌이 높기만한 멋없는 - 미운 오리새끼 같은 -건물 하나가 있다. 인사동길 전체 지역에 1년간 '건축허가 동결'과 '특별설계구역 지정'이라는 긴급한 조치가 내려진 것도 이러한 건물들이 들어서는 것을 막으려는 서울시의 강력한 의지표명이라 하겠다.
이미 지어진 것은 너무도 아쉬운 일이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관찰을 계속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이 건물이 완성된 후 여러 가게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면서 인사동길과 어떤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지 하는, '도시 자체가 가진 자생력 혹은 적응력'을 관찰하려 한다. 공간적인 가로의 연속성을 어떻게 나름대로 극복하는지, 입주해 들어오는 가게-기간들은 어떠한 것이며, 이들이 건축물에 어떤 적응과 변형의 예를 보여줄 지가 주요한 관찰항목이될 것이다.

먹자골목은 먹자골목이나 조금은 다르다.
: 전체적으로 이 골목은 먹자골목의 성격을 띄면서도, 지난 답사의 먹자골목과는 다른 느낌이 있다. 비슷한 기능과 군데군데에 한옥들이 점재한 모양은 비슷하지만, 가장 크게는 골목의 형상에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45회의 먹자 골목은 'ㄱ자형에 다른 한 가지가 뻗은 모양'인 반면에 이번 답사의 03골목은 'ㄱ자형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여러 개의 막다른 골목들이 가지쳐져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골목은 좀더 내밀한 반-사적인 영역을 형성하며 가게마다 다른 다양한 인상을 제공하고 있다. 인사동 골목이 저마다 다른 수준과 느낌을 주는 이유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분석이 필요하고, 이러한 점은 시간을 두고 밝혀 가기로 하자.

04 막다른 골목

어느쪽에 속한 건물인가?
: 창성동에서도 본 예(참조: 33회 한지붕으로 살다.)이지만, 막다른 골목 끝에 같은 지붕을 한 한옥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양쪽으로 다른 두 개의 문이 있다. 도대체 어느 쪽에 속한 건물일까? 언뜻 보기에는 붙은 것 같은 이 건물을 자세히 관찰해 보기로 하였다. 지붕이 하나로 연결되어 보이지만, 왼쪽과 오른쪽 건물의 입면을 보면, 막다른 채의 재료는 오른쪽과 동일한 타일로 마감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건축물과 그 공간은 오른쪽 건물에서 쓰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놓다.
꼼꼼히 건축물의 경계를 나누어 봄도 흥미롭지만, 과거에는 이와 같이 서로가 구별이 안갈 정도로 공동체적인 공간을 형성했다는 것이 더욱 신기하게 느껴진다.

05 수도약국 앞 큰 길
: 이 길은 10여년 전엔 없었던 길이다. 주변의 다른 길과 어떤 연관성도 없이 인사동길을 향해 이렇듯 커다란 스케일의 길이 난 것은 의외라 하겠다. 짐작으로는 이와같은 인사동 동서횡단로가 여럿 계획되었다가, 실행되어 홀로 남은 것이 이 길이 아닐까 싶다.
과거 1910년 경의 인사동길을 보아도, 이 길이 지나는 곳에는 박영효家, 민익두家, 민영휘家라는 세 개의 커다란 필지가 인접하고 있어, 큰 길에서 뻗은 길은 이 커다란 필지들과 큰 길을 연결하는 골목길이 동서에 각각 있었을 뿐이다. 80년대에 경험하였던, 깊고 좁은 골목을 이리저리로 꺽어 들어가 이르렀던 커다란 마당의 '경인미술관(박영효의 집터 일부)의 극적인 감동'은 이러한 역사적 적층과 기능의 변형으로 가능하였다 할 수 있다.
길이 놓임과 더불어 그러한 감동은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06 경인미술관을 들어가 보다.
: 갈수록 변해가는 모습들
전통한옥의 찻집은 그대로 였지만, 마당에 서로 떨어져 마주 보던, 일식건물과 스페니쉬스타일의 갤러리가 이제는 사이가 없이 커다란 유리면으로 답답하게 채워져 있다. '비어있음의 소중함과 가치'를 아는 미의식이 절실한 순간이다.

07 가람화랑
: 인사동길 주변에서 한옥을 이용하여 개발한 모범적인 예로 거론되는 '가람화랑'을 보다. 내부는 '작가 최정화씨'의 디자인으로 매우 단정하고 간결한 느낌이다.
마당을 살리기에는 필지가 너무 작은 크기였음이 아쉽다.

08 <우리세계>와 <청구화랑>을 들어가 보다.
: 청구화랑 옆으로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이 계단은 그 건물의 2층 표구점과 옆건물의 <우리세계>로 연결되고 있다. 지난 답사의 <바람부는 섬>처럼, 남의 계단을 같이 쓰고 있다.
아마도, <우리세계>의 증축이 나중에 이루어져서, 1층 임대공간에 손상을 주지않고, 기존에 생겨있는 <청구화랑>의 계단을 조금 변형하는 것으로 건축주 혹은 임차인과 건축주간에 협의가 이루어진 듯하다.
위에서 보면, 두 건물이 서로 다른 건물이며, 건축구법도 달라 증축의 시기에 차이가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09 <수도약국> 앞 큰 길의 초입에 있는 건물에 오르다.
: 인사동길 동측 중간쪽을 내려다 보다.
한옥뒤로 자리한 나무들 속에 묻힌 경인미술관 자리가 인상깊다.

10 다시 나선 인사동길

: 수도약국 건물 1982년에 지어지다.
길이 만나는 코너를 비워두고 서있다. 일부는 원래 필지가 거리에서 떨어져있고, 나머지는 새 건물을 지으며 외부 주차로 활용된 공간이다.

임시적인 외양을 하고 있는 <평양카페사업본부>
: 위에서도 말한 대표적인 '급조와 날림'의 예이다. 거리의 분위기와는 무관한 딱딱한 외관을 하고, 돌느낌이 나는 쉬트지를 샌드위치 패널에 붙이고, 1층 가게들의 간판이 개성없이 건물의 이마에 나란히 붙어 있다.
그 옆의 가게 입면까지 그러한 경박함은 계속된다.

작은 철재 대문 뒤에 있는 골목과 <귀천>
: 천상병시인의 부인이 운영한다는 '귀천'이라는 카페가 있는 골목입구, 큰 길에서는 매우 가까운 거리이지만, 좁은 골목과 그 사이에 위치한 좁은 대문 때문에 심리적인 심도는 매우 깊게 느껴진다.

11 통인가게 내부를 보다.
: '통인가게 1924'라는 현판이 말해주 듯, 통인가게는 인사동에 자리잡은 전통있는 가게의 하나이다. 이전의 답사에서 집합장소 등으로 많이 쓰일 정도로, <통인가게> 건물은 인사동길에서 눈에 잘 띄고, 조형은 둔중한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한옥이 살아남는 또 하나의 방식
: 외부에서 많이 보던 <통인가게>를 들어가 보기는 이번 답사가 처음이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건물 뒤에 가게와 연결된 한옥과 그 마당이다. 30여년전 지금의 건물을 세우고, 20여년 전에 뒤에 있는 한옥을 사들여 마당과 채를 본 건물에 연결하여 잘 쓰고 있다 하였다. 일반적인 가게의 증축이라면, 매장면적을 늘리기 위해 한옥과 마당은 철거되고, 건물이 들어섰겠으나, 통인의 선택은 색달랐다. 한옥과 그 마당을 오히려 더 잘 가꾸어가게와 연결하여, 한옥과 마당이 지닌 전통적인 풍경과 이미지를 본 건물에 확장하여 끌어들였다.
근대적인 건물 혹은 상업적인 건물과 전통적인 건물이 접합된 경우, 이러한 상호의존적 구도는 매우 바람직하다. 우리 생활에서 이미 이러한 예는 많이 찾을 수 있다. 한옥과 근대식 건축물을 확장하여 쓰는 음식점 특히 전통음식을 다루는 가게들은 이미 그러한 상호의존적 구도를 실천하고 있다.
한옥이 무조건 보존관리되야 하는 대상에서, 나름의 이미지를 통해, 인접한 건축군과 '공생'하는 관계묶음이 필요하다 하겠다.

연속적 흐름을 위한 대응 - 길에 면한 통인가게의 노점들
: 통인에는 건축물만큼 개성있는 디자인의 작은 노점들이 있다. 이들은 일정한 시각이 되면 인사동길에 가게를 열고, 마당까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각 노점을 임대주어 이득을 올리는 목적이 있겠으나, 인사동길의 가로문화가 유지되기 위한 '가로활동의 연속성 확보'에, 뒤로 물러나 앉은 <통인가게>가 길을 향해 해주지 못하는 역할을 이들 노점이 잘 해주고 있는 부수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12 extra - 주차장에 올라가 인사동길을 보다.
: 인사동 골목들을 위에서 볼 수 있는 좋은 장소가 있다하여 이동하였다. 우리가 올라선 것은 애국계몽단체인 '서북학회 회관터'에 자리한 주차장이었다. 이 곳에서는 중첩된 도시의 풍경이 보이고 인사동길은 '그 속에 감싸지듯이 남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또한 지난 답사에서 보았던 <두레>라는 한 정식집이 어떻게 한옥을 연결하고 입구를 내어 쓰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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