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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간을 붙여쓰다
답사는 효자동과 창성동의 경계가 되고 있는 길에 접어들면서 시작되었다.
지난 번 답사에서 대규모 빌라들이 마주하고 있던 바로 그 길이다. 그런데 좌측에 그런 화려한 건물들과는 대조적인 작은 분식가게가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또와분식'은 지금은 보기드문 분식점의 전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시멘트벽돌을 쌓아 올려 창대와 창틀을 만들어낸 이 조그만 공간에서, 분식점 아주머니는 김밥재료를 내어놓고, 길가는 이들에게 김밥싸는
모습을 보이곤 했을 것이다. 지금도 시장통이나 오래된 지역에 가면 볼 수 있는 분식점들의 음식을 전시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면,
이 분식점도 가까운 과거의 우리 가게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북의 곳곳에는 이렇게 아직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가게들이 여기 저기에 눈에 띈다. 특히 여기에서 처럼, 몇 10센티미터의 조그만 형태 ·공간적인 변화를 통하여
외부적으로 시선을 유도하고 내부에서 수행할 기능일부를 수행하는 비중있는 역할을 이 조그만 공간이 해내고 있다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사실이다. 작지만 나름대로의 포인트와 역할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조금 가다가 골목으로 들어서니, 골목 끝으로 가정집이 보이고, 교회가
그 너머에 보였다. 나중에 더 자세히 보니, 가정집중 하나는 교회와 경계가 없이 통해 있음을 발견하였다. 아마도 이제껏 보았던
'종교권력의 영역확장'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뒤에 보이는 '적교교회'에 대해서는 끝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겠다.
담장을 쌓아올려도 나름의 여유가 있었다.
답사를 계속하여, 이 번에는 왼쪽 길로 돌아드니, 공터가 나오고 그것을 면하고 한옥
한채가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 도시 서울에서 한옥의 제대로 된 입면을 구경할 수 있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 앞에 큰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한옥은 서로 밀착되어 있고, 길의 공간적 스케일은 건물의 입면을 다 보기엔 상대적으로 작고
좁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처럼, 어떠한 이유에서건 공터가 생기고 나면, 이 우연한 기회덕으로 한옥의 정면 혹은 측면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경계가 되고 있는 담장의 모습이다. 일정한 높이로 담장을 쌓아 놓은 것이 아니라,
가운데 마당과 양쪽 채의 형상에 맞추어 높이와 모양을 바꾸고, 지금처럼 마당에서 키운 식물 넝쿨들이 담장을 타고 옆으로 넘어와
있는 모습은 매우 여유있고 인간적인 맛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주변과의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보면, 조금 멀지 않은 과거에도 사람들은 만드는 것 하나하나에 '조금은 여유있고 인간적'이지
않았었을까 생각해 본다.
발견되는 '공간의 Layer'
조금더 길을 접어들어, 앞뒤로 보이는 일식집과 벽돌집을
보게 되었는데, 그 재료나 구법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건물에서 보이는 어떤 가리워진 양상은 매우 비슷한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요약하면 '공간의 층' 즉 'layer'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과 외부 사이에 이와는 다른 하나의 공간이 바로
그 'layer'라 하겠다. 이러한 공간의 layer는 답사 중에도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경희궁
서측의 관사지역, 사직동에서 본 주택들, 그리고 extra 답사에서
내부를 보았던 통의동 일본식 가옥에서 이러한 '공간의 layer'는
발견된다.
특히 일식집에서 그러한 것이 자주 발견되는 것은, 전통적으로 일본의 주거가 '緣側--엔가와'를 공간구성요소로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가와는 방과 정원 사이에 있는 좁고 길다란 툇마루와 비슷한 공간으로, 방과 엔가와 사이 그리고 엔가와와 정원사이에도
창호지문이나 유리문이 존재하여, 영역의 깊이감을 더해주는 것이다. 만약 일본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ozu yasuziro의
어느 영화이든 한 편을 감상해 보기를 바란다. 그의 영화에서 특히 이 엔가와라고 하는 것이 일본 주거 공간의 영역적 깊이를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지 잘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일식집은 그렇다하더라도 이러한 것이 우리의 도시속에 왜 나타나는가라는 의문이 바로 생길 것이다. 그것은 과거 일식주거문화가
일부 우리 건축물에 공간구성요소로서 남아있게 되는 문화적 잔재현상일수도 있으며, 또 하나는 증축과 변형의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동선의 통합이 내부에서는 어렵게 되고, 연결의 필요성이 있게 되면, 여러개의 방을 통합하는
복도비슷한 공간이 내부공간과 외부공간 사이에 덫대어지게 되고 이를 다시 창호 등으로 내부화하면 여기에 새로운 '공간의 layer'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 도시주거 공간에도 그것은 나타난다
이러한 layering의 또 다른 양상은 현재 우리 도시 주거 공간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아파트의 베란다공간이 거실이나 안방을
통합하여 주거 전면으로 나서서 외부와의 경계영역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나, 그 기능적 측면에 차이는 있으나 다세대
주택에서 확보된 후면의 베란다 공간이 내부화되어 후면 모두가 샤시로 마감된 독립적인 내부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등 우리의
도시 주거공간이 이러한 'layering'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 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시하고 생각해 볼
문제라 여겨진다.
막혀있는 창들, 억압된 상황들.
답사를 진행하며 이 지역에서 특이한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이유없이 막혀있는
창들이 의외로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1층에 있는 것도 막히어 있는 경우가 있었다. 아마도 짐작하기에는 과거
정권시절에 청와대를 향하는 어떠한 창들도 내지 못하게 했었던 압박의 흔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연무관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한가지 32회 답사 경로 지도의 수정을 이번 회에서 말해두어야 겠다. 지난번 지도에는 연무관이 매우 작은 범위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 답사를 해본 결과 거의 2개의 길을 통합하여, 다수의 필지를 하나로 한 '정치권력에 의해 필지와 도로가
통합된 예'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번 답사 경로에는 이러한 연무관이 점유한
범위와 주변의 주차장등을 추가하여 표시해 놓는다.
집같지 않은 일본식 주택
지난 번에 본 다세대주택 골목을 지나, 어느 좁은 골목에 들어서니, 안전막을 두르고 공사를
하고 있는 집이 눈에 띄었다. 이 골목에서 가지를 뻗은 길 여기저기로 과거의 한옥과 일식주택이 우열을 가리기 어렵게 섞이어
있음을 보았다. 특히 어느 막다른 길에 있는 일식건물은 흥미로왔다.
생긴 모양이 주택이라 하기엔 단순한 구성을 하고 있고, 문 한켠에 써있는 주인의 이름을 보면, 이 곳이 주택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하였다. 아마도 이것이 어떠한 시설이나 부속건물이었다가, 주택으로 기능이 변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여 본다. 그리고
과거의 지도를 보아도, 이 근처가 비어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비어있는 공간과 관련된 어떤 건물일 가능성도 생각해 본다.
기분좋은 발견
좁은 골목사이를 누비다 어느 근대건축 양식의 주택을 보았는데, 비례가
좋고, 재료의 구성에도 무리가 없어 기품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답사 후기에서는 우선 그 모습이라도 여러각도에서 보도록 하자.
골목을 벗어나 조금 큰 길로 나오니 주차장이 보이고, 남쪽으로 내려가니 또 다른 청와대의 부속시설이 연무관 만큼이나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자리잡아 있음을 보게 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은 89년까지 진명여고가 있던 자리와 일부 남은 필지를 통합하여
정부가 청와대 관련시설로 사용하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창성동의 한옥골목들
길을 따라 아까 시작했던 방향의 반대로 내려오다가, 지난 번 답사에서 고전주의 양식을 흉내낸 빌라라고 하였던 건물앞에서 좌측으로
접어 들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빌라의 이름은 'white house'였다.
조금 내려가다가 골목에 들어서니, 효자동보다도 한 곳에 집중되어 모여있는 한옥들과
골목을 보게 된다. 지적도에 한옥들을 표시하여 보니, 이들 한옥이 길에서 한 켜 안으로 들어가 모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길이 닿는 곳 특히 길이 남북으로 된 곳에 먼저 다세대 주택이 들어썼음을 짐작케한다.
그러한 과도기적인 혹은 휴지기와 같은 상황은 저 너머로 교회가 보이고,
전면으로는 다세대주택이 길 양쪽에 들어차고, 그 속 깊은 곳에 한옥인 밀집되어 보이는 풍경에 상징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함에도
이 곳 한옥 골목은 아직도 통일감이 남아 있었고, 매우 조용한 환경같았다.
한지붕으로 살다.
그 중 한 골목 끝에 재미있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지적도 상으로는 막다른
골목 끝을 두 집이 나누어 점유되어 있으나, 보기에는 분명 한 지붕아래 있는 집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다가가서 자세히
보면, 건물의 입면에 벽돌이 쌓인 모양이나 쇠창살등이 다름을 알게 되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지붕과 기둥 그리고 보는 한
틀로 짜여져 있음을 알게 된다.
아마도 건축적으로 큰 것은 공유를 하고, 나중에 보수 혹은 변용의 과정에서 소유권이 다른 두 집이 서로 다른 외장이나 부분적인
공사를 따로 하게 되어 생긴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끝없는 전쟁, 소멸되는 추억들
한옥밀집지역을 돌아 나오니, 추사로에 면한 가게 하나가 철거되고 있었다.
답사 시작전에는 멀쩡하던 건물이 한두시간 돌고 나오니, 무너져가고 있는 모습이란....
이 곳에 오랫동안 살면서 주변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받고 있는 '격세지감'아니 '격월지감'은 우리 같은 행인들이 짐작할 수도
없는 큰 충격일 것이라 생각하였다.
한옥 - 큰집 그리고 그 사이에 들어서는 작은 집들
추사로를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서, 잘 지은 한옥 대문과 지붕이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아마도 경복궁과 가까운 이 지역에 크고 작은 한옥들이 얽히어 있었을 것으로 궁궐과 연관된 시설이나 왕의 친척들의
집, 그리고 권력있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으면, 바로 이전 우리가 보았던 중간 단위의 한옥들이 그 나머지 사이 공간을 메꾸며 들어갔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그러한 근거로는 큰 단위들은 일정한 룰 없이 여기 저기에 산재해 있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면, 작은 단위들은
집합적으로 작은 스케일들의 필지가 그 길의 형태나 경계의 모습을 비정형적으로 만들어 가면서 이들 큰 필지에 연접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교교회와 Interview
답사의 끝에 자교교회에 들어섰는데, 이 교회와 주변의 역사에 대해서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서점의 아저씨와의 interview를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특히 32회에서 가정하였던 많은 내용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가장 큰 잘못은 크게 두가지 인데, 하나는 복개와 추사로 중간에 놓인 블록의 철거 시기가 서로 다른다는 점이다. 복개는 현재로서는
정확히 추정하기 어려우나, 아저씨의 이야기로는 자동차가 서로 지날 수 있는 2차선 정도의 길이 이미 상당히 과거에도 있어왔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 지역에 개발의 바람이 여러차례 불었었을 것이라는 점인데, 새로히 건축물을 짓는 일정한 시기가 있었다 해도,
근대적 건축 형식의 집을 지어 성내라는 곳으로 잘 사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것이라는 가정은 타당성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과거에서부터 잘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일부가 떠나기 전, 한옥대신에 근대적 형식의 주택을 지었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더불어, 저택필지들의 일부는 과거의 커다란 필지들이 분할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임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한 편, 시장형성이
과거 추사로 길 중앙에 있던 블록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기 보다는, 적교와 통인 두 시장이 동서로 그 명맥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고, 오히려 이 남북으로 긴 블록에는 행랑에 작은 가게를 임대한 커다란 한옥들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 한옥의 주인들은 76년 경을 즈음하여, 철거와 함께 강남쪽으로 이주하여 간 것으로 추측된다.
답사를 하면 할수록, 역사적 가정을 함부로 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되고, 이것을 확인하는 방법에 하나로 현지에 오래 살고 있는
분들과의 인터뷰가 상당히 중요함을 깨닫개 되었던 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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